「主婦之友」に紹介される
大正13年、関東大震災の記念号に発表したいからというので、「主婦之友」社から、志村文蔵氏と婦人部の記者が来校しました。私の生い立ちから、東京での苦学の状況、現在の学校の内容などを、入念に調べていって、その9月号に掲載されました。これがきっかけとなって、次々に、各種の婦人雑誌の記事にもとりあげ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英訳を表示]
It was 1924(Taishō 13) when Mr. Bunzō Shimura and the reporter for the women’s department from Shufu No Tomo visited, wanting to spotlight our school in a memorial issue dedicated to the Great Kantō Earthquake of 1923(Taishō 12). They interviewed me and wanted to know details surrounding my birth, my paying my way through school in Tokyo, and the current state of school affairs. We were featured in the September 1924(Taishō 13) issue of Shufu No Tomo. Thereafter, our school became a regular topic in women’s magazines.
[中国語訳を表示]
大正十三年,出版社「主妇之友」为了出版关东大地震灾的纪念号,所以志村文藏先生,跟妇人部的记者来校采访了。他们采访了我的出生,成长过程,东京苦学的状况,及现在的学校经营内容等,然后把内容介绍在九月号里了。
[韓国語訳を表示]
1924년 관동 대지진의 기념호에 안죠여자직업학교의 내력을 발표하고 싶다고 해서 「주부의 벗」사에서 시무라 분조씨와 부인부의 기자가 내교했습니다.「주부의 벗」사는 제가 자라은 내력을 바탕으로 도쿄에서의 고학 상황, 현재의 학교 내용 등을 자세히 조사해 9월호에 실었습니다.이것이 계기가 되어 차례차례로 각종의 여성 잡지의 기사에도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これが、得難い宣伝となりまして、全国各地から、入学生がやって参りました。そして、その人達が、本校師範科を卒業すると、それぞれ郷土にもどって職業婦人として活躍しますので、安城にあこがれる者は、いながらにして、増してゆくのです。その当時、夏休みに帰省する舎生に、土産として、郷里の絵葉書を、一組ずつ、持ってきてもらうように、頼みますと、その数が、25組ほどもあって入学範囲の広いことを物語っておりました。[英訳を表示]
The articles drew new students from all over Japan to our school. The students, after their graduation from our school, began to play very important roles as career women in their hometowns. This was just another factor drawing increasing numbers of young women to an academic life in Anjo. Around that time, as a souvenir from their summer vacation at home, I asked each of the students in the dormitory to bring back two postcards. In total, we collected about twenty-five, and, with so many it showed that we had enrolled many students from all over Japan.
[中国語訳を表示]
此为良机,学校的内容,就接二连三的在各种妇人杂志上被介绍了。对我们而言,这是难得的宣传良机,所以全国各地就来了很多学生入学了。而且,她们在本校的师范科毕业后,就纷纷的回乡,当职业妇女活跃。也因此,向往前来安城的人增多,学生就增加了。当时,宿舍生们在暑期要回乡返校时,要求他们带回当地的风景明信片当纪念品。从各个故乡带回来一组一组的明信片,总计有二十五组之多,这也证明了入学范围的广泛。
[韓国語訳を表示]
이것이 좋은 기회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입학생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본교 사범과를 졸업하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직업 부인으로서 활약하므로 안죠를 동경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난 것입니다. 그 당시 여름방학에 귀성하는 기숙사생에게 선물로 고향의 그림엽서를 한 쌍씩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면 그 수가 25쌍이나 되어 입학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